하, 시작부터 어렵네

오랜만의 히치하이킹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에 밤새 잠을 설쳤다. 갈 길이 멀기에 새벽 일찍 길을 나선 참이었다. 족자카르타에서 며칠 신세를 졌던 현지인 친구, 루에니가 적당한 지점에다 나를 내려 주었다. 큰 규모의 주유소와 휴게소가 위치한 곳이었다. 한 손엔 '눔팡, 반둥'이라고 쓰인 종이 쪼가리를 들고서 쭈뼛거리며 주유하는 차 옆을 어슬렁 대기 시작했다. 운전자들이 나의 눈을 피하는 것 같았다. 내가 외국인이라 쑥스러워서 그러나...(그냥 싫어, 저리 갓!) 워낙 장거리이다 보니 (눈이라도 마주친)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자꾸만 흘러갔다. 해는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일단 식당에 들어가 뭐라도 좀 먹고 기운을 차리기로 했다.

매번 느끼지만 인도네시아 음식은 내 입에 정말로 잘 맞는다(생뚱맞다). 그 유명한 인스턴트 라면 '인도미(indomi)'가 인도네시아에서 만들어진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한가하게 인도네시아 미식을 논할 때가 아니었다(이제야 정신이 좀 돌아오는군). 차가 정말로 안 잡혔다. 해는 머리 위로 떠올랐다. 정오를 넘기면 히치하이킹이고 반둥이고 뭐고 다 포기해야 할 판이었다.

내가 현지어를 할 줄 모르는 것이 큰 장애물이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으면 손짓 발짓을 해야 하는데, 그것마저 영 소질이 없었다. 남들은 서로 잘만 통하는 것 같은데 나는 당최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겠더라(이심전심, 염화미소 그런 거 잘 모른다). 눈치란 사회생활에서만이 아니라 언어에서도 필요한 것인데 안타까웠다. 어쩌랴.

그때, 상대적으로 젊은 남자 운전자가 눈에 들어왔다. 스마트해 보였다. 네 시간 가까이 말뚝 박고 있는 이 자리만은 좀 벗어나 보자는 절박함이 있었다. 다짜고짜 달려가 말을 걸었다. 역시나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가는데 까지 일단 좀 태워다 달라고 사정을 했다(해치지 않아요). 운전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수줍은 목소리로 타라고 했다. 얏호!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자가 머뭇거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의 목적지는 겨우 십 분 거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쨌든 첫 차를 잡아타는 데는 성공했다. 시작을 했으니 이미 반은 온 거다(견강부회는 안다). 조그마한 주유소 앞에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먹어 두고 비워 두는 게 길바닥을 집 삼아 다니는 나 같은 히치하이커에겐 세상 중요한 일이다.




역시 난 운이 좋아


첫 히치하이킹에 성공하자 온 몸에 엔도르핀이 도는 게 느껴졌다. 여유를 찾았다. 사진도 찍고 주유소 사장님과도 이야기를 나누려는 찰나였다. 노란색 트럭이 멈춰 섰다. 설마, 나를 봤나? 트럭기사가 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나에게 트럭에 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운전자 아저씨의 덧니 웃음이 순박해 보였다.

하늘이 도우사, 아저씨는 반둥으로 간다고 했다. 럴수럴수 이럴 수가. 이건 정말 대박이었다. 400킬로 미터를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다니. 아침나절에 까먹은 시간을 벌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테리마 카시!" 아저씨 마음이 변할 새라 얼른 차에 올라탔다.


인도네시아 히치하이킹

나를 태워 준 아저씨의 노란색 트럭. 사진으로 보기엔 멀쩡하다, 그런데 그런데 ㅠㅠ

아저씨는 영어를 모른다. 나는 현지어를 모른다. 서로 어어 하면서 웃음으로 의사소통을 해 나갔다. "하하 반둥?" "이야, 반둥 하하" "하하 하하 하하하...."

트럭 안은 한눈에 보기에도 지저분했다. 내부는 온통 흙먼지였다. 시트 겉면은 뜯어져 나가 솜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덩그라니 놓여 있는 쿠션은 때가 꼬질꼬질 묻어 있었다. 운전석은 오른쪽, 조수석은 2인용이지만 아저씨 짐이 벌써 한 자리를 떡 차지하고 있었다. 뭐 아무렴 어떠랴. 어차피 혼자 앉아서 가니 딱 좋았다.

길 옆으로 보이는 풍광도 좋고, 날씨도 좋고, 운전자 아저씨도 마음씨 좋아 보였다.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졌다(사람이 그렇다. 한 치 앞도 모르고 그저 헤헤 거리는 존재). 단 하나 문제라면 트럭이 너무 느리게 간다는 것이었다. 오늘 안에 도착은 하겠지?

풍광도 즐겨가며 한 이십 분을 달렸을까. 저기 앞에 누군가가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아저씨는 차를 세우더니 그들과 뭐라 뭐라 대화를 나누었다. 뭔가 협상을 하는 것 같았다. 이내 모두들 흡족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부산스러워졌다. 운전자 아저씨는 차에서 내려 창고를 열었다. 길 한켠에 쌓여 있던 물건들이 줄줄이 트럭으로 옮겨졌다. 그러더니 우르르 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이것은 무슨 상황이지? 내가 앉아 있는 2인용 같은 1인용 조수석에 아저씨 한 명과 소년 한 명이 합류했다. 의자에 놓여 있던 짐을 뒤로 치우고 내 배낭도 치우고. 그래도 어정쩡하게 의자에 엉덩이를 5분의 1만 겨우 걸친 꼴이 되었다. '앞으로이 갓'자세가 절로 취해졌다.

가뜩이나 더운데 다닥다닥 붙어 앉으니 찜통이 따로 없었다. 그 두 명은 오죽 불편하겠는가. 이대로는 한 시간 가는 것도 힘들겠다 싶었다. 새로운 손님이 얼마나 함께 갈지 알 수 없었다. 아저씨의 비즈니스에 내가 방해가 되는 거 아닌가 염려도 되었다. 내가 그만 차에서 내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몸을 들썩였다. 운전자 아저씨는 특유의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그대로 앉아 있어도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히치하이킹

'우리 이거 트럭에 다 실어야 갈 수 있드래요~' 빈 트럭으로 열 시간을 가야 할 아저씨에게 갑자기 일거리가 생겼다.




손에 땀을 쥐게 한 빗속의 질주

발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퍼붓기 시작했다. 열대 기후대의 세찬 스콜은 종종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곤 한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다. 누군가 양동이를 들고 쉴 새 없이 푸억 푸억 물을 퍼부어 대는 것만 같았다. 도로는 순식간에 강으로 변했다. 그 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트럭의 와이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었다. 운전석 편의 와이퍼는 아예 움직이질 않았고, 나머지도 부러진 채 작동이 되다 말다 하고 있었다. 비가 억수 같이 퍼붓는데 앞이 안 보였다. 정말 하나도 안 보였다. 아저씨는 운전을 하다 말고 한 손의 운전대를 놓은 채 몸을 밖으로 내밀어 손으로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억수처럼 퍼붓는 비에는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아저씨는 비에 흠뻑 젖을 대로 젖어 있었다. 트럭은 평균 시속 30킬로 미터로, 최대 시속 40킬로 미터로 겨우겨우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트럭을 자세히 보자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유리창은 다 금이 가 있었고, 조수석 쪽 창문은 삼분의 일쯤 열려 더 이상 닫기지 않았다. 창쪽에 앉은 소년은 그 틈으로 들어오는 비를 손으로 막고 몸으로 맞고 있었다. 사이드미러 하나는 거울이 반밖에 남아 있질 않았다. 백미러는 원래 없던 것 마냥 존재의 흔적도 없었다. 운전석의 계기판을 덮은 플라스틱은 다 깨져 있었다. 트럭의 천장도 뜯어져 속살이 고스란히 보였다. 있어야 할 것들이 없는 게 많았고, 그마저 있는 것들도 노끈으로 칭칭 감겨 있었다.

비 때문이 아니더라도 가다 이대로 주저앉아도 '그동안 고생했어'란 말이 절로 나올 상태의 트럭이었다. 지금까지 멈추지 않은 게 대단할 지경이었다.


트럭타기


정말이지 이러다 사고가 나는 건 아닌가 식은땀이 났다. 아저씨 역시 이 상태로 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도로가에 차를 멈춰 세웠다. 하늘에서 바늘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아저씨는 와이퍼를 고치기 위해 혼자 무던히 애를 쓰고 있었다. 아저씨께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나는 어쩌나. 이대로 아저씨와 함께 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되었다. 반둥이 문제가 아니라 사고 일보 직전의 상황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어디쯤이고 여기서 어떻게 가야 할까. 처음 차를 잡아 탈때의 기분 좋음은 사라지고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에 잠긴 사이 아저씨는 와이퍼를 대충 고쳤는지 출발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대책 없이 다시 차에 올라탔다. 다른 차편을 알아보기로 하는 것은 조금 뒤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와이퍼 작동이 딱히 나아진 건 없었다.



공짜로 얻어 타기 불편한 마음

아까 차에서 내렸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거짓말처럼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내 마음이 요렇게 바뀌었다 조렇게 바뀌었다 하는 게 참으로 간사했다. 그래도 다행은 다행이다.

상황이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되자 이제 다른 근심거리가 생겼다. 이렇게 허름한 트럭을 모시는 분인데 경제사정은 당연히 넉넉지 않겠지. 중간에 들른 조그만 점빵에서 점심도 대충 때우시지 않던가. 차를 공짜로 얻어 타기 미안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아저씨에게 공짜로 태워주실 거냐고 확답을 받지 않았었다. 어쩌면 아저씨는 돈을 바라고 나를 태워준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지점에 이르자 아까 짐을 실었던 분들이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운전자에게 운송비용을 지불했음은 물론이었다. 운전자 아저씨가 히치하이킹을 이해할 확률은 낮다, 매우 낮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돈을 드려야 하겠지. 아저씨가 공짜로 태워줬을 확률이 끽해야 20퍼센트쯤 될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이젠 아예 가시방석이었다. 돈을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돈을 드리면 얼마를 드려야 하나. 진작 버스비 정도는 알아봐 둘 걸 그랬다. 버스비의 한 80퍼센트쯤 드렸으면 적당할 텐데. 도통 얼마를 드려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이만큼은 너무 많은 것 같고, 또 이만큼은 너무 적은 것 같고. 풍광이고 뭐고 얼마를 드려야 나도 손해를 안 보고 아저씨도 흡족할지를 계산하느라 머리가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그까짓 것 돈 좀 주면 되는거지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지도를 보니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반둥은 자바섬에서도 상대적으로 해발고도가 높아 기후가 시원한 편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까부터 트럭은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고속도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산 등성이를 따라 힘겹게 올라가는 트럭들.


벌써 트럭을 타고 이동한 지 여덟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한낮의 긴장감 때문인지 몹시 피곤하고 배도 고팠다. 계속 적정한 사례금을 생각하느라 기분까지 착잡해져 가고 있었다. 아직 적당한 금액을 결정하지 못했다.

밤은 깊어가고 갈 길은 멀고 몸은 피곤하고 배도 고프고 삼중고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반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현지인 친구, 레니가 아저씨와 통화를 한 사실이었다. 내가 아저씨와 함께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친구가 있으니 최소 안전에 대한 염려는 붙들어 둘 수 있었다.

그래 정했다. 적정한 사례금을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해 봤었다. 그 중에서 가장 적은 금액을 드리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괜히 많이 드렸다가 외국인을 태우면 공돈을 챙길 수 있다는 인상을 남겨서는 안 된다. 나에게도 안 좋고 다른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오늘 이렇게 고생했으니 돈이라도 아껴야 그나마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아저씨에게 돈을 넉넉히 드리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열 가지도 넘게 생각났다. 그렇다면... 그냥 최소한의 돈만 드리면 되겠다. 돈을 안 드리면 아저씨 마음이 상할 수도 있으니 드리긴 드리되 요 정도 드리면 그래도 나한테 대놓고 뭐라 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니 그나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어둠을 뚫고 무거운 트럭을 게우게우 끌고서 오르막 길을 달리고 달렸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듯싶다. 아저씨는 내 친구 레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날 지점을 의논하는 것 같았다. 속이 다 후련하다. 이렇게 후지고 불편했던 트럭과 그것보다 더 불편했던 마음과도 이젠 안녕이다. 아저씨는 커다란 쇼핑몰 주변을 빙빙 돌더니 적당한 지점에 차를 세웠다. 이젠 이 길고도 긴 하루도 끝이 나 간다. 아저씨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며 내릴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서는 돈이 안 보이게 주먹을 꼭 쥔 채 아저씨에께 손을 내밀었다. 금액이 다소 작은 것 같아 내심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혹시라도 아저씨가 실망하실까 봐 염려도 되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한 마디 알고 있는 인도네시아 말로 인사를 드렸다.

아저씨는 순간 당황한 기색이었다. 내 손을 자세히 보지도 않았다. 이내 특유의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손사래를 쳤다. "넣어둬 넣어둬"

예상치 못한 아저씨의 반응에 내가 더 당황이 되었다. 돈이 굳었다는 기쁨도 잠시. 어, 아저씨는 돈을 보고 좋아하셔야 되는데. 좀 더 달라고만 안 하셔도 감사드릴 일인데!

아저씨는 끝까지 순박한 웃음을 잃지 않으신 채 손짓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선 갈 길이 바쁜 듯 이내 떠나갔다.


인도네시아 운전수

나는 머리를 한 대 띵하고 맞은 것 같았다. 아저씨가 떠나 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한참을 서 있었다.

얼마를 드려야 할지 몇 시간을 고민 고민했던 일들이 다 부질 없는 짓이었다. 낡은 옷차림을 하고 덜덜거리는 트럭을 몬다고 해서 으레 돈을 기대하겠거니 짐작했다. 저렇게 가난한 사람이 히치하이커, 특히 외국인을 태워 줄 땐 금전적인 보상을 바라는 거라고 오해했다. 만의 하나 돈을 기대하지 않았어도 주면 굳이 거절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나는 그래도 좀 더 잘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괜히 인색해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돈을 얼마를 드리면 되나 나 혼자 속으로 깎고 또 깎았다. 적게 줄 수 밖에 없는 적당한 이유를 열심히 찾아가면서 말이다.

겉으로는 '현지인들을 이해해야지, 현지인들과 어울려야지' 했지만 나는 결국 돈으로 사람들의 가치를 환산하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은 타인에게 순수하게 호의를 베풀지 않을 거라고 은연중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작 나는 돈 몇 푼 아껴보려고 음료수 하나 제대로 된 걸 사 먹지도 못했으면서 저 사람은 나보다 가난하겠군, 저 사람은 도움을 베풀 처지가 아니겠군, 오로지 돈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겉모습으로 사람을 재단했다.

거의 포기할 뻔한 오늘 나의 여정에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난 아저씨는 나에게 기꺼이 자신의 차 문을 열어 주었다. 그까짓 것 어차피 돈을 좀 드리면 아저씨의 차에 안락하게 앉아 있을 권리쯤 가지는 것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뭐가 이렇게 가난해, 뭐가 이렇게 더러워, 뭐가 이렇게 위험해' 투덜투덜 거렸다. 왜? 나는 돈을 좀 줄 거니까. 돈 주는 사람은 그 정도는 해도 되는 거 아냐?

친구가 도착할 때까지 나는 하염없이 그 자리에 서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전히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우산을 쓸 수가 없었다.

이렇게 근본 없이 오만한 생각에 젖은 인간에게 우산은 무슨 우산이람. 그냥 비 맞아도 싸!


by 이가든

유라시아를 걷고 달리는 히치하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