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산간지역에 내리는 비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날마다 지루해지려는 오후가 되면 굵은 비가 한바탕 쏟아져 준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토란잎이 어지러운 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굵은 빗방울 한 방물만 살짝 내려앉아도, 나팔 꽃잎은 감당을 못해 옆으로 픽, 하고 쓰러져 버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도 꽃잎 따라 몸이 기울어진다. 마음이 여유로우면 한참이라도 지켜보고 싶다.

나는 지금 갈 길은 멀고, 마음은 급하다. 시계만 쳐다보다가 어디까지 왔는지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 거기 위치가 어디쯤이죠?』

『 네, STIKI 대학교 뒤편입니다. 잠시 후(sebentar lagi)에 도착하겠습니다.』

인도네시아인들이 말하는 ‘잠시 후’(sebentar lagi)라는 그 말, 나는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아침 나절에 잠시 후 도착이라던 전자회사 서비스 맨은 저녁 무렵에 도착했다. 잠시 후 마친다던 연설이 한 시간을 넘어서 마친 교수도 있었다.


낯선 길을 갈 때 운전기사에게 묻는다.

『 얼마나 더 가야 목적지 입니까?』

『거의 다 왔어요.』

그렇게 말해놓고서 거의 한 시간을 더 가는 사람들이다. 잠시 후 도착이라던 이 시외승합차는 또 얼마나 지나야 도착할까?

그들의 속담이 생각난다. Biar lambat asal selamat(늦을지라도 목적지에 안전하게만 도착하면 된다.) 

느긋한 그들의 문화, 노(No)가 없고 예스(Yes)만 있는 인도네시아 사람들 .


인도네시아-말랑 



인도네시아 말랑(Malang)이 내가 사는 도시다. 

나의 집에서 수라바야(제2도시) 공항으로 가는 길은 1시간 40분 정도 걸렸는데 요즘 들어 3 ~ 4시간이 소요된다.

말랑에서 수라바야 가는 중간지역 시도아르조(sidoarjo)에서 작년에 룸뿌르 빠나스(Lumpur panas)가 분출되고 있어 도로가 날마다 거의 정체상태이다. ​


이 상황을 고려해서 나는 4시간 전에 콜 해둔 시외 승합차가 이상하게 아직 도착 하지 않는다. 

비행 출발 시간은 2시간 반 밖에 남지 않았는데. 너무 답답하다! 사무실로 연락을 해 보았더니 전달이 잘못되어 지금 출발 준비 중이란다. 

오늘 내가 타야할 이 비행기를 놓치면 절대로 안 되는데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벌써 십여 분이 또 흘렀다.

그때, 한국의 총알택시가 생각이 났다. 

인도네시아에도 그런 차가 있냐고 물었더니 이리저리 연락을 해 보더니 그 시간 안에 도착이 가능한 차가 있다고 한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나를 태워 공항으로 갈 승합차를 기다리는데 또 십여 분이 흘러가고 있다.

기다리면서 평상시와는 정반대로 나는 이런, 기사가 와 주길 바랐다. 

가능하면 인상이 험상궂고 성격이 거친 성격의 기사. 그런 사람이라야 짧은 시간에 나를 공항에 도착시켜 줄 것 같다.

붉은색 승합차 한 대가 도착하자마자 크락션이 울려 퍼진다. 

기사의 얼굴은 굵고 짙은 눈썹, 소처럼 큰 눈, 피부는 태양에 그을려서 잘 볶아진 커피 빛이었다.


나는 차를 타자마자 인사 겸 말했다.

『아저씨 소중한 가족들 있지요? 』

『네 있어요.』

『나도 소중한 가족 있어요.』

그리고 나는 이 차로 반드시 시간 내에 공항에 도착해야만 한다는 뜻으로 비행시간을 찬찬히 두 번이나 알려 주었다.


기사는 내 마음에 들도록 신나게 달려주었다. 공항으로 가는 동안 기사는 인도네시아 사람답지 않게 크락션을 1분 간격으로 울렸다. 

달리지 않는 앞차에게 ‘비켜라’는 말 대신에 전조등을 깜빡거렸다. 동승자인 내가 민망할 정도로 신호를 보냈다. 

뿐만 아니라, 급브레이크도 수도 없이 밟았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내가 선택한 길인 것을 대형사고가 났어도 죽는 사람만 죽고 꼭 살아남는 자가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


인도네시아-비행기 

차가 급정거할 때마다, 발아래 둔 가방이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내 몸이 앞으로 쏠릴 때마다 내 선택에 대하여 후회를 했다. 

난 수라바야공항에서 발리 행 비행기를 무조건 타야한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 출발한 피디가 나보다 먼저 도착하여 낯선 발리공항에서 이리저리 나를 찾을 것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보다도 내가 먼저 공항에 도착해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이렇게 마음 졸이면서도 나는 공항으로 가고 있다. 

수라바야에서 발리섬으로 가는 비행기 항공권보다 더 비싼 인도네시아 총알승합차를 타고서. 

살아가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클 때도 있다는 걸 진실로 깨달으면서 말이다. 

드디어, 내 꿈은 이루어졌다.


기사가 얼마나 빨리 달렸으면, 3시간 걸릴 그 거리를 1시간 10분 만에 도착하였을까. 

발리행 비행기 안에서 나는 즐거웠다. 

큰소리로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다. 마치, 비행기를 처음 탄 사람처럼 마음은 들뜨고 괜히 여승무원에게 ‘예쁘다’는 말도 해 주었다.


인도네시아-발리


발리에 도착했다. 

시내로 나와서 머물 호텔과 그 외의 여러 가지를 체크하다가 보니 힌두교의 녀삐(Nyepi) 의식 행렬로 공항 가는 길이 막혀 버렸다. 

정차된 차 들은 가만히 서 있다. 운전자들은 고개를 밖으로 죽~ 내밀고 이리저리 살핀다. 차가 도대체 움직이질 않는다.


우와, 내가 어떤 방법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 한국에서 오는 비행기 도착했을 것 같다. 

도착한 피디가 입국비자 수속을 밟고 짐을 찾고 있다면 약간의 시간은 있다.

나는 또 머리를 써야만 했다. 역시 머리는 모자 쓰기 위한 장식품은 아니었나보다. 

운전기사에게 나중에 공항에서 만나자 말했다. 

그 다음 나는 도로에서 붉은 신호 받고 있는 낯선 오토바이에게 오젝(오토바이택시)을 해 줄 수 있냐고 묻고 공항으로 태워 주길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자동차보다 먼저 가서 피디를 만났다.

산다는 것은 늘 이렇게 허둥지둥하는 것일까?

삶의 지름길은 없을까?

목숨을 담보로 했던 총알승합차를 탔다. 혹여, 성공으로 가는 총알승합차는 없을까?​



김성월 : 여행작가/ 수필가, 사진가/

2006년 재외동포재단 문화콘텐츠 우수KNN상 수상

출간저서 : <그러니까 인도네시아지!>, <인도네시아 그 섬에서 멈추다>

사진전 : <붓과 렌즈로 담은 인도네시아> – KCC(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

<김성월 사진전> - indonesia day, JIKS(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

현, 한국문인협회,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