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08년도 내가 인니에 일찍 진출해서 업계 터를 닦은 인물이올시다

가게가 거의 없는 미개발 지역이었고 이제 큰도로나 수로 변전소가 짓어지던 곳이지

인도에  내가 할게 없어서 낙시 좋아하니 둔치가 있는 폭 20미터짜리 강가서 메기낙시를 매주 했단말이야

거기가 마을에서 오토바이 타고 15분이면 오는곳이고 주말에 할것 없는 농사꾼들이 반찬도 잡을겸

수십명이 줄줄이 앉아 나무낙시대로 지렁이 잡아 메기낙시했어

메기 말고도 피래미나 잡어도 있는데 그건 잡을때마다 구경하는 꼬마들 주는게 룰이고 닭 오리 먹이로 준다더라.크게 자라면 25cm정도짜리 메긴데 맛있어 그거 잡아서 지하수 다라이에 몇시간 놔두고 집주인 아지메한테 저녁 맡기면 바싹 튀겨서 삼발소스에 쌀밥 대롱하고 주는데 아 침고인다. 난 요리비대신 항상 10마리 전후 잡아서 내가 다섯마리 먹고 나머진 집주인 아지메식구 먹으라고 줬지.


참 이말을 할라고 적었지. 거기 강가에 박소 리어카. 세블락 리어카. 스라비 좌판이 항상 있었어 다 먹어봤는데 스라비만 전병같이 내 입에 맞더라. 박소는 지금 인니에서 먹는 박소가 아니고 생선비린내향이 나는 밀가루새알심덩어리에 맛없는 죽같은걸 담아서 작은 비닐에 묶어서 꼬지랑 주는데 당시 1리부짜리니 그런 저질품질이었지. 한번 입대보고 못먹겠더라 이 처자가 열아덟 미혼모로 아기업고 어머니 따라와 박소 장사하는데 한살배기 갓난애기를 업고와. 가끔 메기큰거잡힐때 두세마리 선물로도 주고 상황봐서 해질녘 남은 박소 열봉지정도 사서 난 안먹고 꼬마애들 나눠주면서 호감주면서 친분을 텃지.

 마을 주민들도 나랑 엮어주는 눈치고 순박하니 전형적인 시골 처자란 말여 임신시킨놈이 책임안질뿐이지. 나도 총각이라 선물공새 하고 야밤마다 애기 재우고 내 방에 오는데 삼년내내 물고빨고 안해본게 없이 나를 참으로 사랑하더라. 내가 사랑이란 단어를 적는 대상은 그 처자밖에 없어. 그정도로 심장 깊은곳에서 나를 사랑하더라고


지금 그 과거로 돌아가라면 난 돌아가서 무조건 그 처자랑 결혼하고 내가 애 책임지고 우리 애 낳고 살알았을꺼여

근데 난 3년 뒤에 회사를 옮길때 가고 처자 안데려오고 나만 나갔어. 그 당시 내 나이 내 한국친인척 가족 미혼모 인도녀랑 결혼한다는건 말도 안되는거였걸랑. 울고불고한게 자꾸 생각나 지금도 미안한데 찾아보라면 찾아볼수 있지마는

차마 내가 잘못한거니 다시 나타나진 못하겠더라 이쁘고 착해서 지금쯤 좋은 총각만났을거야.

고로 기회가 왔을때 이게 인생에 기회인지 내 이기심인지 잘 구분하고 좋은 결정하야 하는겨.지금 내 나이는 그런 이쁘고 어리고 참한 처자 절대 못만나 그나마 그중 나은 여자 만나려고 마음다잡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