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출장왔다. 오늘부터 업무시작인데 밤을 세버렸다. 그런데 피곤하지는 않다, 하얗게 불태웠다.
불과 몇시간전까진 내옆엔 어떤 여자가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여자였다. 지금은 누군가의 아내가 된 여자.
우리는 한국에서 만났다. 이제 갓 대학에 졸업하여 승무원을 하던 그녀를 나는 호치민에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만났다.
손님과 승무원... 비행기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한국말이 어색한 그녀가 베트남사람이었다는 걸 몰랐다.
한국 비행기니 당연히 한국인만 있는줄 알았던만큼 어수룩 했던 나는 뭔가 이국적인 하지만 예쁘고 단아한 외모에 홀려버렸고
이러쿵 저러쿵 연락처를 받아 연락을 주고받았다. 단아한 외모와 메이크업으로 치장된 화려함에 숨겨진 맨얼굴 처럼 첫직장 그것도 한국이라는
당시엔 낮선나라에서 타향살이 외노자였던 그녀는 몹시 힘들어했고 나역시 취업준비생 막바지 굉장히 쫓기듯 긴장하고 살았던 피곤함인지
서로 굉장한 의지를 했고, 결국 정신이 다음에 마음이 가까워지고 최종적으로 몸까지 가까워져 난 거의 그녀의 자취방에 살다시피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남녀가 몸을 가까워지는 증거를 남기는것은 거의 손가락질 받을만큼 음지의 행동이었으며 직업에 상관없이 멀쩡하고 인서울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동남아 여자를 만난다는건 마치 어딘가 부족한 인간처럼 여겨지던 시절인지라 그녀의 베트남 동료들 내 친구들마저도
우리가 서로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대다수 몰랐다. 어쨋든 우린 행복했고 꽤나 많은 서로의 역사에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특히 그 당시 그녀는 동남아 처녀의 어딘가 촌스럽지만 수수해보이는 외모와 달리 굉장히 육감적인 육체의 소유자였고,
조신한 외모와 달리 밤에는 굉장히 격정적인 반응의 체위와 신음으로 로 나의 거시기를 매번 미치게 만들었다.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 나는 무사히 대기업에 취직하여 서울에 잔류하게 되었고, 나의 벌이덕에 우리는 대다수가 모르지만 서로 서로 더더욱 행복한 나날
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성장하는 젊은이들에겐 변화가 있기마련, 그녀는 나에게 베트남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였다. 대다수 외항사 직원들이 그렇지
만 쌓이는 연차에 비례하지 않는 복지 그에따른 육체적, 정신적 고뇌 그리고 뿔랑결심의 일반적인 절차였다. 그녀는 이제 경력직으로 본인의 국가항공사
에서 대접받으며 일을 할 수 있었고 지금보다 훨씬 격차가 심했던 한-베 경제상황에서 그녀는 대단한 비전을 설계하고 있었다. 누가그랬던가 야망을 꿈
꾸는 자는 남녀불문 엄청난 육체적 갈망을 갖고있다고. 난 왜 그 얘길 처음들었을때 그 말부터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내 거시기는 그녀에게 미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왠만큼 돈을 버는 직장인인만큼 대가리로 짱구를 굴리더라. 베트남 아니 동.남.아 나에겐 그냥 허접하고 못살고 더럽고 벌레
많고 물마시면 배아픈 그런 동네 이미지가 떠오르며 겁이 났다. 변명같지만 그게 당연한거 아닐까? 그러면서 못사는 나라 여자라는 원망이 솟구치며
그렇게 화가 날 수 없었다. 잘사는 나라에서 돈만 잔뜩벌고 먹튀하는 후진국 여자... 그래 그때의 나는 너무나 어렸다. 직장다니고 사회생활은 하지만
그냥 로린이였다. 그녀는 자기와 결혼해서 베트남에 가자고 했었다. 자기는 계획이 있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난 믿지 않았다. 그당시의 어리고 나
름 멀쩡히 생겨서 멀쩡한 한녀들 줄소개팅이 있던 자칭 대기업의 성공한 나... 말도안되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동남아 동남아 동남아 내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결국 그 시점을 시작으로 우리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지기 시작했고 정신이 멀어지고 마음이 멀어지고 최종적으론 몸도 멀어졌다, 몸이
가장 나중에 멀어지는 아이러니... 그녀는 떠났다.
난 그렇게 연락을 끊었고, 새여자 새삶을 시작했다. 좋았다. 물론 그녀가 있는와중에도 소개팅, 원나잇은 계속 있었고 잠깐 잠깐 텀으로 양다리도 있었
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완벽한 자유인인 나는 해방감을 맛보았고 그렇게 나는 3분카레같은 인스턴트 사랑만을 지속했다. 그게 잘못이었을까?
잘나가던 사업부가 기울기 시작했다, 내탓은 아니었다 아니 아니었을거다. 그렇게 상여금이 1년 2년 줄기 시작했고 좀 진지빨고 진득히 여자를 만나볼
까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내주위엔 속칭 김치녀들만 바글바글했다. 아니 어쩌면 걔네가 한녀 평균이었을거다. 나는 베트남 여자만을 보고 20대 후반을
보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하나 둘 수면위로 피어오르는 남녀 불평등의 간증과 그에따른 연애/남자들의 부담 현실화 + 업무과부화.
난 도망가고싶었다. 근데 왜 그때 동남아가 들어왔을까? 그제서야 들어왔을까? 아세안이 한국인이 어느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성장해서 였을까?
그렇고 동남아에 관심을 갖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좀 우여곡절끝에 여기에 오게됐다.
인니에 있는 동안 인스타그램의 활성화가 진행되어 그녀의 계정으로 소식이 닿게 되었다. 그녀는 과연 본업으로서의 업무 + 부업의 성공 + 재력가
남편 3박자로 고국으로 귀환하고 승승장구 하였다. 눈가의 주름과 주변의 팽팽하고 탄력있는 피부의 후배들과 대비되는 젊음은 어쩔수 없으나
대신 그녀는 그를 극복하고도 남을 후배들의 존경심 + 재력을 갖춘 '성공한 예쁜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이게 급성장하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문물을
경험하고 온 중상류층의 급격한 상승인건가? 한편으론 80년대 급성장한 시절 20대를 살아온 엄빠이야기를 회상하며 아세안이 그랬구나를 남겨진
사진의 날짜를 보며 파악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너무나도 멋지게 잘 성장한 그녀와 상대적으로 안그래보이는 내가 되비되며 내가 무엇을 잘못
한걸까? 괜시리 자격지심이 들었다. 성적/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행동은 했다만 난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공부했고 또 노력하며 살았다. 이것이
무조건적인 내 잘못만은 아니니라.
여튼 난 이렇게 저렇게 해서 그녀와 그녀의 고국에서 다시 만났고 주말동안 우리는 젊은시절 그때처럼 미친듯이 사랑하며 뒹굴렀다. 그녀의 얼굴은
주름이 보였고 피부는 쳐졌으며 아래는 헐거워졌다, 그때와 같은건 내손과 온몸으로 느껴지는 실루엣의 감촉, 그녀의 야한 그 한마디 한마디들, 허공에
꽉찰거 같은 신음소리, 격렬하고 벌어지는 체위들. 최근에 그 어떤 한녀 / 와니따도 내 자지를 이렇게 딱딱하게 만들지 못했고 내 도파민을 이렇게까지
나오게 하진 못했다. 너무나 좋고 행복했다.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니라.
여튼 신기루마냥 이틀이 지나갔다. 진짜 신기루 갔다, 분명 내 몸과 머리는 행복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20대 젊은 시절엔 내가 아무것도 없는 것
처럼 만들었고, 지금은 그녀가 아무일도 없던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복수일까?
복수라면 십여년 걸렸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잔인하다.
일이 손에 안잡힌다. 집중이 안된다. 역시나 또 아무도 무슨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또 도망치고 싶은 느낌이 든다, 그때처럼. 지금은 돈도 있고 여유도 있
어서 진짜로 그냥 도망치면 된다. 근데 도망치면 뭐할건가? 나에겐 책임져야 할 가족도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할 목적도 없는데. 그리고 어쩌면 한국에서
도망쳐서 젊은시절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동남아로 왔는데 이제 또 어디로 도망칠텐가? 도망쳐도 누군가 알아는 줄까? 난 그냥 별볼일 없는 자연인인
데...
그녀처럼 화려하지도 주목받지도 않는 삶인데... 진짜 같잖다, 같잖은 '것'이 되버렸다.
어땟을까... 그때의 베트남? 어땟을까... 나의 같잖음 같은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