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전사에서 9년 근무하면서

레바논,남수단 파병,몽골전술교류,네팔산악전문,애리조나스카이다이빙 고급과정 등 기타 군사교육을 꽤나 수료했어.

일단 다른얘기를하자면 

14년도 세월호 침몰 당일에 투입해서 그후 8개월을 현장원점에 머물면서 구조활동을 했어.


희생자 수습하는데 있어 나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싶고 돌발사고에 있어 이성적으로 판단해 행동하고 싶은데 

규정에 얽매여 제한적으로 밖에 움직일수 밖에 없는 내 자신에 대해 회의감이 들더라. 그 순간 만큼은 군인이 아닌 구조대원으로써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싶었거든. 그런데 어쩌겠어 국가재난사태 상황이라 언론에서 조명하고 민 관 군 통합 구조작전이라,

 군 은 보여지는것에만 신경을 쓰느라 우리가 행동함에 있어 주의지침을 많이 내려놓은 상태였거든.


생계형 직업군인은 하고싶지 않아서 였을까 세월호현장에서 철수 후 처음으로 전역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지만 

마땅히 기술도 ,전공도 없는 나여서 사회에 나올 자신이 없었거든. 계속 군생활을 하는쪽으로 스스로를 이끌었는데  전역생각을 한번 하니까

그뒤로 군생활의 단점만 보이더라. 아무튼 전역지원서를 내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어. 2년간의 망설임이었지    


내 나이 32살. 32년인생 가장 후회한 순간을 꼽으라 한다면 전역을 고민하던 그 2년간의 기간이라고 말해주고싶어

한살이라도 젊을때 나왔어야 했는데 나는 굉장히 후회하고 있어.이 모든것은  뜬금없이 하는 이야기야. 


이 사이트를 접한지는 갓 이틀이 되었어. 이곳에 분명 나보다 형님도 계실거고 동생분들도 계실건데 

20대의 나이에 먼 해외에 나가 일을 한다는것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해.

비록 직종는 달랐지만 내가 2년간 망설이고만 있을때 당신들은 도전한거잖아. 나는 그 부분에서 당신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지금은 한국공항공사,항만공사의 부름이 있을때 가서 대테러전담팀에게 폭발물 교육을 시키고있어 . 폭발물구분,식별,해체, 제작. 

그냥 프리랜서지 후후


그렇게 사회로나와 영국도 가고 샌프란시스코 LA  시애틀 콜로라도주 알래스카주를 떠돌며 영어를 파괴시키고 다녔어. 

내년에 인도네시아 여행을 계획중이야.  아무튼 너네가 어떤 인생을 살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내 알지는 못하겠지만

확실한건 내가 존경하는 멋진사람들이라는거고 비록 고충도 있고 여러 에로사항도 있겠지만 

결국은 결과로써 과정을 입증할 사람들이야. 무슨말이 필요하겠어 

그런 곳으로 나는 여행을 가는거고. 당신들로 하여금 내가 자부심을 느끼게 되어 뜬금없이 쓰게되었어. 


일단 좀 자야겠어 술퍼마시느라 밤을 꼬박샜거든.  

자주자주 올께 . 사이트가 뭔가 사람느낌나는 분위기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