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 양의 엄마 띠라(51)씨는 한국인 남성과 만나 첫째 딸(25), 둘째 하진 양을 낳았지만, 남편이15년 전 한국에 들어간 뒤 연락을 끊고 양육비도 주지 않아 홀로 아이들을 키웠다.


세 살 때 이후 아빠를 못 본 하진 양은 '아빠가 보고 싶냐'는 질문에 힐끔 엄마 눈치를 살피더니 "그래도 아빠를 만나고 싶다"고 답했다.


띠라씨는 "그때는 서로 좋아서 (한국인 남성과) 같이 살고, 아이들도 낳았지만, 지금은 보고 싶지 않다. 너무 실망했다"고 힘들었던 시간을 돌아봤다.


찌꾸빠에는1990년대에 한인 신발공장10여개가 몰려있었다.

당시 한국에 가족을 두고 혼자 이곳 공장에 취직한 한국인 남성 기술자들은 인도네시아 여성과 만나 소위 '두 집 살림'을 많이 차렸다.

주로40대 한국인 남성과20대 초반 인도네시아 여성이 같이 살았고, 2세를 낳은 가정은80가구 정도로 추산됐다.

그러다1997년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한인 공장이 줄도산 또는 타지역으로 이전하자 2세 가정도 일부 흩어져 현재50가구 정도가 남아 있다.

이들50가구 가운데 3분의 1만 한국인 아빠가 현지에 남아있고, 나머지 3분의 2는 아이들을 놔두고 한국으로 들어가 연락을 끊거나, 지병·사고로 사망했거나 인도네시아에서 또 다른 가정을 꾸렸다.


2006년부터 '인도-코리아'(인도네시아-코리아·인코)라고 불리는 이 지역 한인 2세들을 챙겨온 고재천(71) 선교사는 "일본인들은 인도네시아 여성과 아이를 낳은 뒤 본국에 돌아가도 양육비를 철저히 보내는데, 한국 남성들은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아빠들은 귀국 후 몇 달만 생활비를 보내다 아예 번호를 바꿔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아이들은 아무 죄가 없다. 얼굴만 보면 한국 아이들이다. 어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보살폈다"고 덧붙였다.


나도 한국인 남자지만, 제발 이딴짓들은 하지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