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늘도 지나가던 아주 약간 나이 있는 행인이야
언제나 처럼 꽤 자주 인도사랑에 들어와
젊은 아이인지 아니면 젊은 척 하는 친구인지
패기있는 글들을 보고 있어
딱히 영양가가 있는 건 아니라 정독까진 아니지만
재미는 있더라
사무실을 나서기 전
웬지 키보드를 꺼내 두들겨 보고 싶은 이 마음은
자카르타에 낀 스모그처럼 짙은 그리움인지
심해에 소복히 쌓인 바다눈과 같은 꼰대스러움인지
모르겠지만 말야
어쨋든 오늘 마음이 동한 김에
한가지 주제로 얘기를 끄적거려 볼까 싶어
이런 주제로 된 장황한 얘기가 없는 거 같아
그래서 꽂힌 "내가 본 인니에서 일하기-현채편"이라는 주제로
키보드 좀 두들겨 볼게
장황하게 조금 긴 끄적거림이 될 거 같다는 느낌이 오는데
조금 긴 끈적거림이 느껴지더라도
자연스럽게 이 느낌 그대로
전적으로 내가 인니에서 보고 느낀 걸 기반으로 해
아주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인 내용이라는 얘기지
아
주재원으로 올 사람에게는 도움이 안될 듯 해
그에 대한 이야기는
혹시 바람처럼 찾아 올 다음 번 한가스러움에 실어 보내볼까
첫번째 얘기,
내가 본 현 시점 인니 현채 취업의 실상
십 몇년 전 아직 내가 창창할 시절에
인니 취업 혹은 부임의 장점은 딱 두가지였다고 봐
'한국 대비 아주 높은 월급과 복지'
아 물론 그 때도 열정으로 일하던 회사들이 있었지만
그 때는 현채고 주재원이고 구분이 많이 없었지
현지에서 주재원으로 채용되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그런데 요즘 젊은 아이들 얘기를 들어보면
연봉 테이블이 점점 한국을 쫓아가거나
아니면 한국보다 낮은 경우도 많더라
특히 자와섬 내는 점점 낮아지는 거 같고
자카르타는 말할 것도 없고
오지도 체감 상 많이 낮아졌다는 얘기도 들리고
혹자는 젊은 아이들이 잘 모르고 부르는대로 받아서 들어와
시장가를 떨어뜨렸다고 하고
혹자는 젊은 아이들이 욕심이 많다고 하고
이 화상들아
틀니 빠지지 않게 가짜 이빨 꽉 물으려무나
나처럼 20세기 말 인니 부흥의 끝 물을
21세기에 꽃봉오리에 맺힌 이슬처럼 맛 본 세대는
그런 얘기를 할 자격이 없으니
본인도 그리고 나 또한 달러의 달콤함에 취했었으니
그 시절 누가 협상을 해
부르는 달러로 동공이 확장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던 때 였는데
요즘 시절이 하 수상하여
돈에 살고 돈에 죽는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을 줄이고
고인물들은 자리를 보전하고
한국은 일할 사람이 넘쳐나는데
인니는 일할 사람이 필요하니
이렇게 낮아지는 현상이 있는가 싶기도 한데
나 또한 소복히 쌓여가는 세월의 흔적 뒤에 남은 건
휘몰아치는 파도의 격정보다는
거울같은 호수처럼
안일함과 편안함을 쫓을 뿐인 거 같네
장강후랑추전랑이라지만..
미안하다
어쨋든 '한국 대비 높은 월급과 복지'
그 장점은 지금 이 시점에서는 사라졌다고 보는게 맞지 않나 싶어
가끔 댓글 보면 높은 월급 받는다 하는
아이들인지 친구들인지 모르겠지만 있긴 하던데
고생했고 수고했어
그 월급 받기까지 쉽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해
그런 자리가 많으면 좋겠지만
많지도 않고 허들도 높고
그게 지인 찬스든 엄빠 찬스든 간에 말이야
단점은 많지
아니 십 몇 년 전에 장점이었던 것이 세월이 쌓이면 단점으로 바뀌는 거 같아
몇 년 지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엄두가 안 날 거야
아니 돌아갈 기회가 많이 없을 거야
인니에 현채로 일하는 기간이 쌓여가는 만큼
한국에 직장인으로 돌아갈 기회가 많이 없어져
현실에 벽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겠지
자보데따벡에서 주택보조금이라도 100% 나와 봐
한국 들어가면 월급만 보면 몇 급은 더 올려서 가도 비슷할까 싶고
인니 중소기업에서 한국 대기업으로 들어가기는
운, 시간, 능력이 다 맞아 떨어져도 힘들거야
이전에는 인니 경력을 살려서 한국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사람들도 꽤 있어
지금?
세월이 쌓인만큼 인니를 겪은 사람도 많아졌고
세월이 쌓인만큼 인니의 인재들도 많아졌고
인니 취업의 단점을 장점으로 되돌리려면
고인물이 사업을 확장시켜 서로가 달러를 뿌리던 시절을 다시 만들어야
꿈나무들이 화려하게 살텐데
그래도 이제는 욕심이 많아져서 어려우려나
인니에서 일하기를 생각하는 당신들에게 해 주고 싶은 얘기는 이거야
한국보다 후진국인 인니에서 취업을 하고자 하는 이유가 있겠지
사람 숫자만큼 있을 그 이유들은 중요하지 않아
다만
당신 이력서에 몇 줄 쓰이면
몇 년 후 이직으로 얻을 또 다른 기회가
아직은 있을 수 있겠지만
당신 인니로 들어와서 일하다 중간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 기간만큼 당신은 뒤쳐지는 거야
들어왔으면 인니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들어와
두번째 이야기,
취업했다고 끝난 건 아니다
약간 오래된 얘기기는 한데
인니에서 한 회사에 들어가면 퇴직까지 간다는 개념이 있었어
퇴직이 뭐야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계속 간다라고 했지
사장부터 사원까지 서로 으쌰하면
성장하던 시절이었으니
그 때야 대부분 제조업들이었으니까
사장이더라도 공장 가지고 사업하면 공장충 아닌가
아
여담인데
지금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에게 공장충이라 했더니
화 내더라
이전에 공장충이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털밥 먹으니 털복숭이네
톱밥 먹으니 담배 피우면 불 잘 붙겠다
실밥 먹으니 똥꼬로 실 뽑겠네 라고
서로 놀리고 그랬는데
이런 젠장
쓰고 보니 지금은 소름 끼칠 정도로 미친 소리였구나
그 때는 뭐가 그렇게 웃겼을까
공장충이라는 단어로 화를 내는
아이는 아니지만 청년을 보니
분노의 시절인지 아니면
우리가 만든 업보인지
미안하다 시대를 못 쫓아간 아주 약간 나이 든 행인의 망발이었다
어쨋든 그 시절에는 끝까지 간다는 개념이 있었어
한국은 IMF 때 끝났던 평생 직장이라는 분위기가
여기 인니는 아직 있었지
아니지 오히려 그 시절 그 사람들이었으니 그랬나
하지만 이 순간
내가 느끼는 바로는
한국에서 취업하더라도 마찬가지긴 하겠지만
인니는 오히려 한국보다 더 치열해야 할 거야
과, 차장급 님들아
지금 그 정도 직급 달고 있으면 어느정도 경력이 될 거라 생각해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 있는 회사에
어느정도 적응은 했지?
고생했고 수고했어
그런데 말이야
요즘 하 시절이 수상하여
부장들도 한 순간 한 떨기의 민들레 꽃씨처럼 날아가더라
이사들도 한 순간 서부영화의 회전초처럼 굴러가더라
사장들도 한 순간 쳤던 벼락처럼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더라
날아간 꽃씨 자리에
굴러간 회전초의 자리에
벼락이 내려꽂힌 자리에
당신이 올라갔다면
그 동안의 고생이
돈은 모르겠지만
직급으로 돌아온 걸
축하해
그런데 아닐걸? 대부분 외부에서 꽂히지 않았니?
왜냐고? 한 순간 날아갔잖아
내부 승진은 어느정도 순리에 맞춰 움직여도
고인물들이 해 줄까 말까 하는 시절이야
그러면 준비하자
위에 얘기했듯
시간이 지난만큼 인니의 인재들은 쌓였고
시간이 지난만큼 당신도 늙었어
석사를 따든
프로젝트를 진행하든
실적을 쌓든
위를 잡아먹어도 좋고
다른 곳으로 이직도 좋아
그러니까 땅 소리가 나면 뛰쳐나갈 수 있게
다리 힘을 키우듯
당신 이력을 좀 더 키워 봐
시간은 많이 지났지만 경험해 보니
부장부터는 고인물이 되더라
고인물 내보내려면
밖에서 수로를 파야 돼
그게 많이 부담이야
포크레인도 부르고 인부도 써야 되거든
우리 신입 대리 님들아
뭐 같은 회사라 느끼고 있어도
뭐 같은 상사라 느끼고 있어도
요즘 바깥은 많이 춥단다
모 기업에서 인니 현채를 뽑는데
석사 출신이 많이 지원했다고
요즘 시절이 어떻게 된 거냐고 하더라
요즘 시절이 어떻게 되긴
너와 나의 연결고리가 만들어낸
우리 밖의 소리지
내가 위에 얘기했든
너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면
너가 보낸 인니에서의 시간은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아쉽다 하는게 아니야 진짜 시간을 버리게 되는거야
한국에서 써 먹을데가 마땅치 않아
그러니까 준비하자
저 할 거 없어 보이는 과, 차장님들이
그래도 너랑 맞붙을 때는 내공이 좀 있을거야
저 치들이 시간 채워 진급한 거 같아도
그래도 인니에서 뭔가 먹히는 게 있을 것 같으니 올려준 거 거든
잡아 먹기에는 약간 부담스럽고 하니 기다려 보자
회사마다 분위기는 좀 다르겠지만
신입 대리가
석사를 따러 평일에 나가 보겠니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겠니
상상 속의 동물처럼 인니에도 있기는 하던데
혹시 석사 교육비를 회사에서 지원해 준다거나
프로젝트를 밑기고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 주면
뼈를 묻으렴
한국에도 없단다
그게 아니면
우리 인니어랑 영어는 좀 공부해 보자
여기 인니에서 필요한 건 바로 언어
일 이년 더 버티자 생각하면서
인니어만 잘하면 이 글로벌 시대에 약간 부족한 듯 하니
영어까지 장착해 보자
바이어가 왔는데 과, 차장들이 버벅거려
그럼 그 때가 기회야
이민국이나 세관에서 왔는데 과, 차장들이 버벅거려
그럼 그 때가 기회야
아 물론 그 기회는 타이밍을 잘 봐
잘못 보면 역으로 뭉개질 수가 있으니
그 타이밍은 참 말로 하기가 어렵구나
뭉갤 수 있는 기회가 오던지
아니면 이직 기회를 잡던지
그럴려먼 다른 건 모르겠고
영어랑 인니어는 무조건 하렴
영화에 나오는 동시통역기 나오려면 한참 멀은 것 같더라
님들아
당신들이 살 찌운 이력서와 스펙이
회사만 살 찌우는 건 절대 아니야
회사가 님들을 살 찌워주면 참 좋겠지만
미안하다. 사람에게 거는 기대가 제일 큰 리스크거든
좀 험악한 비유지만
오리 목구멍에 사료 깔대기를 끼우는 이유는
배를 갈라 기름진 푸아그라를 먹기 위함이지
오리를 배 부르게 함은 아닌 걸
혼자서 찾아 먹는 호랑이가
산중의 왕이 됨을
기억해 주렴
처음 받았던 느낌대로 길고 끈적거리는 끄적거림이 되어버렸네
가끔 인도사랑에서 젊은 아이들의 패기를 느껴
그 패기로 끄적거려 봤어
난 이런 걸 느끼고 나서
걸어온 길을 되짚어 가기에
너무 멀리 왔고
나이 들어 다시 단물 빨면 당뇨가 올 거라
그래도 누군가 뭔가 느낀 끄적거림이 되었기를 바라는데
길게 쓰고 나니 이런 미련도 생기네
나이가 차면 모든 게 미련이지
이 미련 털어내며
난 또 가던 길 가 볼게
아디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