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적 기억을 회상해보면 비가 오는 날에는 동네 아저씨들이 우리집에 약속이라도 한듯이 어김없이 막걸리를 들고 찾아 오셨고

그럴때면 항상 우리 어머니는 부엌에서 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부침개를 굽기 시작했다.

하얀 밀가루가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걸 보다가 곧 노릇노릇한 냄새에 취해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졸고는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부침개를 나는 아버지와 아버지친구분들이 모여있는 사랑방으로 수차례 갖다 드렸고

여러번의 노고가 끝나야만 마침내 나와 내 동생의 부침개가 익어가는 차례를 구경 할수있었다.

한창 잘먹을 성장기의 3명의 아이들이 한장의 부침개로는 부족했기에

우리는 사랑방에서 화투를 치며 반주를 하고 계시는 아버지 곁에서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기웃 거리곤 했는데

기분이 좋았던건지 아니면 노름판에 집중이 안되는건지 내가 알 방도는 없다만

아이들은 이런거 보면 안된다며 천원짜리 지폐를 주시며 안방으로 가라고 하는 옆집 아저씨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달랑 하나 있는 선풍기는 사랑방 손님들의 차지가 되었지만 괜찮았다.

비를 맞으며 부리나케 달려간 허름한 구멍가게에서 브라보콘 3개와 신호등 사탕을 천원에 맞춰 사서 돌아올때는 더위마저 씻겨 내려가는거 같았기에





어릴적 기억 속 나는 우기가 정말 좋았었다만 지금의 나는 우기가 오기도 전부터 우기 보낼 생각에 지래 걱정 부터 하고 있다.

찌는 더위속에 상쾌함이라고는 개미 부랄만큼도 없는 이 나라의 우기는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나를 집안에만 가둬놓게 이르게 했고

끈적거림속에 하루를 보내고 온 나는 하루종일 에어컨을 틀어대다가 감기에 걸리게 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뻐루마한(주택가)에 유일한 외국인이였기에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 동네 전체에 소문이 나버렸고 빗속을 뚫고 동네 주민들이 무언가를 놔두고 갔다.

"바람이 들어갔을때 좋은 약이야"

"몸에서 바람을 빼주는 풀이에요"

"떼 자혜(생강차)를 마시면 목이 풀릴거야"

약만 먹고 푹자면 나을거라 생각 했던 나는 겉으로는 고마워 하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 에서는 귀찮게 하지말고 얼른 가버려 라고 독백을 하고 있었고

그들이 준 성심담긴 것들을 맛보고는 독백을 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 이불속으로 숨어 버렸지만 이내 다시 울리는 벨소리에 침대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문 앞에는 내가 종종 가던 와룽(인도네시아 식당) 아주머니 딸이 한손에는 비닐봉지를 들은채로 서있었다.

와룽에 갈때면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뒷 모습만 본 터라 잘 몰랐지만 눈 앞에 있는 그 와니따(여자)는 제법 마른 몸매에 맞지 않는 거대한 굴곡을 갖고 있었다.

"감기 걸렸다고 해서 이걸 가지고 왔어요. 밥 벌써 먹었어요?"

"아니.. 아직"

와니따는 비에 흠뻑 젖어 쇄골에 물이 고인게 보일정도로 속살이 비치는 티셔츠를 한번 쭉 짜더니 이내 나의 허락 없었지만 천연덕스럽게 우리 집 안으로 발을 옮겼고

곧 쭈구려 앉더니 비닐봉지 안의 물건을 꺼내었지만 나는 안에 있는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품지 못하였다.

이미 시선이 풍부한 과즙을 내뿜을것 같은 커다란 젖가슴에 꽂혀 있었고 가려진 브레지어 안에 있는 꽃봉오리가 어찌 생겼을지에 대한 다른 궁금증만이 증폭 하였기 때문이다.

봉지를 뜯기 위해 힘을 주는 순간 와니따의 철렁 거리는 그것이 마치 영국 왕실 만찬 후 나오는 요크셔 푸딩 처럼 적당한 탄력감을 뽐내고 있었기에

감기로 인해 텁텁해진 입안은 음식을 맛보지도 않았것만 침이 흥건히 고여버렸고 , 아밀라제가 분명히 원하는것은 음식이 아닌 구릿빛 열매의 과즙이였다.

그렇게 몰래 기분좋은 감상을 하는동안 어느샌가 그녀는 식사 준비를 마쳤고 자신이 준비한 그것에 대한 감상평을 원하는지 이내 나를 쳐다보기 시작하였다.

산딴(코코넛기름)이 둥둥 떠 있어 고소할거 같은 느낌을 주는 맑은 국물에 닭고기로 데코가 되어있었고 당근과 짜베(인도네이사 고추)로 식감을 돋구는그것은 소또 아얌(닭국) 이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은 식기전 나에게 전달하기 위해 눈이 따가울정도로 거친 빗속을 뛰어 온 와니따의 정성스런 마음을 느낄수 있었기에 감동해버리기에 충분했다.

스푼으로 소또 아얌(닭국)을 휙휙 젓더니 이내 닭고기를 몇번 건져냈다가 덜어냈다 하다 결국 크기가 큰 것을 찾아내고서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곧장 내 입 앞으로 들이 대었다.

"이걸 먹으면 몸에 추위가 사라질거에요"

"고마워, 맛있어"

"비가오면 소또 아얌(닭국)을 먹곤 해요. 차가운 바람이 몸에 스며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입안에 들어온 따뜻한 국물이 텁텁했던 입안을 적셔주었고 이내 몸안을 따뜻하게 뎁혀주기 시작하였다.

마지막 국물 한방울까지 비운 그릇을 보고 나서야 와니따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이내 묻기 시작하였다.

"한국 사람은 다 오빠처럼 잘생겼어요?"

"아니.. 나보다 다 잘생겼어. 난 못생긴 편이야"

"세상에 못생긴 사람은 없어요. 우리는 신이 창조한 창조물이니까요 , 다만 못생긴 사람은 없어도 잘생긴 사람은 있지요"

"맞아 우리는 신이 만든 창조물이야 그래서 너가 그렇게 예쁜거구나"

순간 당황하며 꽃보다 붉게 물들어버린 볼을 감추려고하는 와니따를 보자니 너무나 웃기면서도 귀여워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고

이내 내가 물었다.

"남자 친구는 있니?"

"아직 없어요"

"얼굴도 이뻐서 인기 많을텐데 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요. 오빠 같은 사람이 없어서요"

"..."

이내 나의 볼도 와니따처럼 붉게 물들어버렸고 정적이 흐르다가 곧 쿵쾅거리는 서로의 가슴소리가 방안에 울리기 시작했다.

그저 몇초 되지 않던 시간이지만 길게만 느껴지던 눈맞춤은 서로의 두근거리는 감정을 흝어보기에 충분한 시간 이였고 , 마주보던 두 눈동자는 서로의 입술로 향하더니, 이내 입술이 서로 밀착하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또아얌의 짭짤한 냄새가 서로의 혓사이에서 뒤엉키고 , 빗물에 적셔진 그녀의 야한 살냄새에 취하여 , 부풀어 올라 터질것만 같은 그녀의 한쌍의 꽃봉오리를 탐닉하더니 , 그날 밤 우리는 지금까지도 가슴속에 여울져 남아있는 사랑을 하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 비가 올때면 부침개를 부친다.

부침개에 막걸리 한잔 걸치고 난 이후 그리움의 눈물이 주룩주룩 내리는 창문밖을 바라보다 보다보면 그 그리움은 태평양을 건너 저 멀리 떨어져 있는와니따로 부터 온걸 느낄수 있었다.

그럴때면 마음속으로 물어보곤 한다.

"아유 나는 잘지내고 있어. 너는 잘니내고 있니?"

그리고 이내 난 소원한다.

서로의 그리움이 담긴 이 빗물이 내려 땅을 적시고, 범람하길, 거대한 홍수가 되어 우릴 덮치고 언젠가는 나와 그녀를 같은곳으로 인도하기를

비가오면 나는 부침개를 먹는다. 비가오면 그녀는 소또 아얌을 먹을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다르지만 , 비가 오면 우리는 항상 같은 그리움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