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없지만 인도네시아에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종교문제입니다. 인도네시아의 문화의 많은 부분은 종교에서 비롯됩니다. 

오늘은 인도네시아 종교에 관한 배경과, 인도네시아의 공식 종교인 이슬람, 개신교, 천주교, 힌두교, 불교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인도네시아 종교

인도네시아의 헌법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실질적으로 종교는 의무고, 종교선택의 자유가 있을 뿐입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서는 공식적으로 아래 5가지 종교만 인정합니다.

이슬람교, 힌두교, 개신교, 천주교, 불교

이렇게 5가지 종교 중 한가지를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종교가 자신의 신분증(KTP)에 들어갑니다. 외국인 근로자라면 KITAS 에 들어가겠죠.

인도네시아는 이렇게 5가지 종교 중에 하나를 믿어야 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참고로 법적으로는 신분증(KTP)의 종교란을 빈칸으로 놔두는 것이 허용된다고 하나, 인도네시아에서 종교를 공란으로 두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분위기입니다. (링크)


그러면 왜 인도네시아는 종교의 의무가 있을까요?


종교를 의무화한 이유

종교는 원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때부터 있었습니다. 이 당시 왜 수카르노가 종교를 의무화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무슬림들은 인간과 짐승의 차이가 종교라고 할 정도로, 종교를 믿지 않는 자들을 인간취급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종교를 의무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수카르노도 무슬림입니다.)

공화국 건국 초창기에는 공식 종교가 있었지만, 공식 종교가 아닌 종교를 믿는다해서 불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대통령인 수하르토때부터는 오직 공식적으로 인정된 종교만 믿는 것을 의무화했습니다. 이는 당시의 반공정책 때문이었죠.

짧은 배경설명을 드리면,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는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그리고 1965년에 G30S라고 불리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G30S는 친서방 우파 장성 군인을 암살한 사건인데, 여기서 수하르토 장군은 암살을 피하고,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정권을 잡습니다. 죽다살아난 수하르토는 집권 초기부터 인도네시아에서 과격한 반공주의를 실천하죠.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무조건 유일신을 믿는 종교를 강제한 것입니다.



반공주의와 유신론의 관계

반공을 위해 종교를 강제한 것을 이해하려면 공산주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기본적으로 칼 마르크스의 막시즘(Marxism)을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막시즘

칼 마르크스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칼 막스는 유물론적 논리를 내세웠는데, 쉽게 말해서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오직 돈(물질)의 양으로 결정된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즉, 자본주의 세상은 소수 자본가의 행복을 위해 다수의 노동자의 행복이 희생되어야만 하는 시스템인거죠. 그런 점에서 만인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써야 된다는 이론입니다.

이러한 공산주의 논리에서 “행복을 이루는 공식에 정신적인 것은 완벽하게 배제” 됩니다. 사랑, 우정, 효는 물론이고 종교의 신앙심 역시 행복을 이루는 공식에서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오직 물질(돈)만이 행복을 결정하고, 신앙심과 같은 추종심은 오직 공산주의 지도자만을 위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공산주의 지도자의 모든 행위를 100% 신뢰하니까요. 

이 때문에 무신론자를 공산주의 빨갱이로 보는 이분법적인 방식이 현재의 인도네시아의 종교 문화를 만든 것이죠. 당시의 PKI(인도네시아 공산당)의 지지자들이 대부분 무신론자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무신론자였지만 종교가 있는 상태)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수카르노 초대정부에서는 유일신이 아닌 신앙을 믿는다고 불법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유교, 도교는 물론이고 심지어 유대교, 조로아스터교까지 있었죠.

즉, 수하르토때 들어서야 유일신 신앙이 아닌 종교는 불법이 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종교 비율


인도네시아 종교 비율


유교는 매번 없어졌다 생겼다를 반복하다 2014년에 행정부에서 완전히 빼버렸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종교는 매우 편중되어 있습니다. 이슬람교 신자가 압도적으로 많죠.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87%인 2억 2천만명이 무슬림 신자이며, 이는 단일 국가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입니다.

실제로는 2억 2천만명이 종교를 독실하게 믿는다고는 보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왜냐면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신분증에 이슬람을 넣는 것이 사회생활 하기에 가장 무난하다고 보기 때문이거든요. 자바섬에 사는 토착민 인도네시아인들이 이렇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이슬람을 속칭 Islam KTP(이슬람 까떼빼: 신분증용 이슬람)이라 부릅니다.

반면에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은 자신이 기독교를 믿지 않아도, KTP에 기독교로 기입하는 경우가 많죠. 사실 다른 종교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러면 인도네시아인들은 대부분 종교가 없는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실제로 인도네시아인들은 상당히 종교에 기대고 삽니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아닐 뿐이지, 한국의 대다수 종교인들보다는 신앙심 깊은 사람이 많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이렇게 종교가 이슬람으로 편중 된 탓에, 인도네시아의 거물 정치인들은 대부분 무슬림입니다. 표를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까요. 역대 대통령은 모두 무슬림이었고, 앞으로도 무슬림일겁니다.


인도네시아 종교 분포


인도네시아 종교 분포 지도


인도네시아의 종교는 인종이나 섬에 따라 분포가 상당히 다릅니다.

인종적으로 프리부미(토착민)들은 무슬림이 가장 많고, 화교들은 불교신자나 기독교 신자가, 동쪽 섬 흑인들은 기독교 신자가 가장 많습니다. 지리적으로는 발리를 제외한 동쪽섬은 기독교, 전체적으로는 이슬람교로 볼 수 있죠. 발리섬만 힌두교구요.

초창기 인도네시아 공화국 시절에는 지금처럼 이슬람교가 전국적으로 널리 퍼지지는 않았었습니다. 무슬림 인구는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에 밀집되어 있었죠. 하지만 수하르토 정권부터 실행된 이주정책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자바/발리/마두라 섬에서 인구밀도가 낮은 섬으로 많은 인구가 이동해가면서 많은 지역이 무슬림 강세지역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위 종교지도에 이슬람 강세지역이 아닌 섬도, 무슬림 신자 비율은 상당히 높습니다. 심지어 말루쿠 같은 섬은 1990년대 초기부터 무슬림 숫자가 기독교 신자 숫자를 넘어섰죠.


인도네시아 이슬람


인도네시아 이슬람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신정국가는 아니지만,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나라인만큼, 어디든 이슬람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일례로, 인도네시아의 3대 법체계중 하나인 종교법은 이슬람 율법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왔다고 하죠.

무슬림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 인도네시아의 근대문화는 이슬람 문화를 중심으로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남녀유별, 왼손 오른손 구분, 머리터치 금지, 반팔 반바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솔랏(기도) 시간에 맞춘 생활패턴, 금요일 반일근무, 이둘피트리 연휴 등등, 인도네시아인들이라면 무슬림이 아니라할지라도 상당히 익숙한 이슬람 문화입니다.

또한, 이슬람교에서 술을 금지하다보니 다른 기호품인 담배와 커피가 매우 발달하게 되었고, 돼지고기 역시 먹지 않으니,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등을 활용한 요리가 발달했죠.


인도네시아 이슬람 역사 – 인도네시아의 중심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기원

인도네시아 최초 이슬람 술탄국

이슬람 문화가 인도네시아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3세기경 무슬림 상인들이 북부 수마트라를 통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입니다. 그때 이후로, 이슬람교는 신문물로 여겨지고 불교/힌두교왕국들은 무너지면서, 수마트라섬 및 자바섬의 주요 종교는 힌두교에서 이슬람교로 바뀌게 되었죠.

특히 식민지 시절 이전에는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상당히 강성이었습니다. 아랍의 이슬람 원형과 비슷한 형태였고 당시 힌두교세력들을 다 쫓아냈었죠. 하지만 네덜란드가 침략하게 되자,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더 이상 베타성이 강한 강성주의를 띌 수 없게 되었고, 점차 이전의 힌두교와 불교, 토속신앙 등과 섞인 형태로 변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식민지 시절 말기에는 인도네시아의 이슬람교가 다민족 인도네시아인들을 단합시켜주는 이념으로 자리함에 따라, 네덜란드와 일본에 투항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죠.

그렇다보니, 독립 후 이슬람교는 이미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의 종교이자, 중심사상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 집권 초창기 시절에는 강성 이슬람 세력과 다툼이 많았죠. 왜냐면, 비이슬람 지역이 따로 독립을 주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가장 화두가 되었던 것은 이슬람교가 인도네시아 헌법의 어느 위치에 있어야 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강성 이슬람 세력은 샤리아 율법을 헌법의 기초로 둘 것과, 자카르타 헌장에 무슬림은 샤리아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요구했지만, 수카르노는 모두 거절합니다. 그리고 샤리아 율법 대신, 종교 다양성의 자유를 보장하는 빤짜실라(Pancasila)를 헌법의 기초원칙으로 둡니다. 이로써 수카르노는 강성 이슬람 세력과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룰 이슬람 깃발

다룰 이슬람의 단체기


당시 가장 큰 강성 이슬람 세력의 주동자였던 까르또수위르요(Kartosuwiryo)는 자신의 세력권에서 인도네시아 이슬람국(NII, Negara Islam Indonesia)을 세우고, 샤리아 율법을 헌법위에 올려놓는 다룰 이슬람(Darul Islam) 운동을 펼칩니다. 이들은 초기 정부의 혼란기를 틈타, 아체, 술라웨시, 자바섬 등에서 무장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수카르노는 아체주만큼은 주단위에서 샤리아 율법을 적용할 것을 인정해줍니다. 그러니 전국각지의 이슬람 강성세력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샤리아 율법을 적용해달라고 했죠.

하지만 그 이후 2대 대통령인 수하르토 시절부터는 이런 합의가 없었습니다. 특히 초창기 수하르토 집권시기에는 이슬람 강성주의자들의 힘을 빼놓기 위해, 정계에 기독교인을 많이 등용했습니다. 이로써 빤짜실라의 원칙이 더욱 견고해지고, 강성 이슬람 세력은 약해지게 되었죠.


인도네시아 이슬람 교파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99%가 수니파입니다.

이슬람의 교파를 짧게 설명하면, 전 세계적으로 수니파 90%, 시아파 10% 고, 수니파가 정통파, 시아파가 분파로 구분됩니다. 

꼭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정통파인 수니파가 오히려 세속적인 반면, 시아파는 반(反)세속적입니다. 그래서 수니파는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반면, 시아파는 이란, 이라크에만 집중되어 있죠.

인도네시아 이슬람은 수니파이면서도, 다른 수니파 국가(사우디 아라비아)의 이슬람과 다소 다른 문화를 가졌는데, 이는 또다른 이슬람교 소수종파인 수피즘(Sufism)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렇습니다. 수피즘은 신비주의적 성향이 강한 소수종파로, 본인의 금욕과 절제 등을 통해서 알라에게 다가가는 방식의 종파입니다. 여기에 당시 인도네시아에 남아있던 각종 토속신앙과 힌두교, 불교 등이 섞여서 만들어진 게 현재의 인도네시아 이슬람교입니다.

그러니까, 종교적으로는 수니파 교파를 따릅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수피즘, 토속신앙, 힌두교, 불교 등의 외부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세속적인 인도네시아 이슬람 – 아방안주의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세속적인 것으로 유명한데, 엄밀히 말하면 지역마다 많이 다릅니다. 아체(Aceh)주는 아예 종교경찰이 있고, 이슬람 샤리아 율법으로 종교재판을 열곤 합니다. 여성에게도 태형을 가하는 걸로 많이 잘 알려져있죠.

인도네시아 이슬람 태형

이런 태형은 일반적인 형사사건이 아닌, 종교법 위반에 걸린겁니다.

하지만, 아체주는 예외적인 경우고, 전체적인 인도네시아 이슬람은 상당히 약성에 속합니다.

그 이유는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토속신앙과 전통 인도네시아 문화를 받아드리는 아방안(Abangan)주의가 강하기 때문이죠. 위에 언급한 것처럼, 인도네시아의 이슬람교는 아랍 이슬람교와 종교적으로는 별로 다르지 않지만, 문화적으로는 많이 다릅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여성에 대한 관념입니다.

아랍의 이슬람교에서는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되고, 남성에게 종속적인 존재로, 여성의 사회활동에 제약이 많습니다. 밖에도 혼자서는 못 나가고, 운전도 하면 안 되고, 특히 아바야나 차도르, 니캅 등을 입지 않고 외출하는 것은 불법이죠.

그런데 인도네시아 여성은 아바야는 커녕 히잡(Jilbab) 착용도 자유입니다. 기도할때만큼은 아랍식으로 기도복장을 입지만, 평소에 바지를 입거나 짧은 치마를 입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런 복장의 자유도를 떠나, 인도네시아 여성의 사회진출도 상당히 활발합니다. 한 예로, 대학 진학률에서도 남녀가 비슷합니다. 고위직에 여성이 있는 경우도 많구요.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종교적인 관습을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있기 때문에, 정체성이 확립되는 사춘기 시절부터는 가급적 종교관습을 지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특히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그런 분위기가 더 심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사춘기 시절즈음 해서 라마단 금식을 시작하고 여아들에게 히잡을 씌웁니다. 참고로 남자들은 턱수염을 기르고 포경수술을 많이 합니다.


인도네시아 기독교 – 개신교와 천주교

기독교는 인도네시아에 두 번째로 많은 인구가 믿는 종교입니다. 전 인구에 겨우 10%뿐이 안 되는 수준이지만, 인도네시아의 기독교인 수는 동남아에서 필리핀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습니다. 그 10% 기독교 인구 중에 개신교가 약 7%, 천주교가 약 3% 정도 됩니다.

기독교는 자바와 수마트라 섬을 제외한 대부분의 섬에서도 상당히 넓게 퍼진 종교로, 성경(Alkitab)은 100개 이상의 인도네시아 민족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 개신교 분포 지도 (2010)

인도네시아 개신교 분포 지도 (2010년)


인도네시아 천주교 분포 지도 (2010)

인도네시아 천주교 분포 지도 (2010년)


기초 용어정리

기독교(Kristen) = 개신교(Kristen protestan) + 천주교(Kristen Katolik)

* 한국에서 기독교가 주로 개신교를 의미하듯이, 인도네시아에서도 Kristen만 언급한다면 보통은 개신교입니다. 하지만 본 글에서는 기독교는 개신교와 천주교를 모두 포함한 의미로만 씁니다.



인도네시아 기독교 역사 - 식민지배와 기독교 유입


인도네시아 기독교 유입


인도네시아의 기독교는 유럽계 침략자인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에 의해서 유입이 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은 천주교(로만 가톨릭), 네덜란드는 개신교(칼뱅파)를 전파했죠.

포르투갈이 네덜란드보다 인도네시아에 먼저 들어왔고, 네덜란드는 포르투갈 세력을 밀어내면서 서서히 전 인도네시아를 잠식해갔기 때문에, 현재의 인도네시아에서는 네덜란드의 개신교가 포르투갈의 천주교보다 훨씬 널리 퍼져있습니다.

포르투갈은 천주교 전파에 상당히 공을 드렸습니다. 자기가 지배한 지역에는 천주교 선교자들을 들여와서 천주교 전파를 하게 했죠. 초창기 천주교의 전파의 시작은 1534년 말라카 지역을 점령한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선교사였던 프란치즈 자비에르(Francis Xavier)는 수천명의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천주교를 전파하였죠. 이후 말루쿠와 누사 뜽가라, 술라웨시섬 등 포르투갈인들이 침략에 성공한 지역은 모두 천주교 선교활동도 병행되었었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 동인도회사(VOC)를 세우는 시점을 기점으로 천주교 선교활동은 잘 이루어지지 못 하였고, 천주교 신도수도 급격하게 줄어들게 됩니다.

왜냐면 네덜란드는 개신교가 아닌 종교는 금지시켰었거든요.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천주교만 금지시켰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면 불교사원이나 이슬람교 사원은 그냥 내비두었고, 특히 현지인들이 이슬람교를 믿는 것에 제약이 없었던 반면, 천주교 성직자 및 포르투갈 선교자들은 잡아다 투옥시키거나 사형시켰거든요.

네덜란드가 이럴만도 했던 게, 당시 네덜란드는 천주교 국가인 에스파냐(스페인)와 종교문제로 독립전쟁 중이었습니다.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 동인도 회사를 세운 것은 1602년인데, 에스파냐와의 독립전쟁은 1648년에 끝나니, 당시 네덜란드인들이 천주교에 대해서 유난히 베타적이었던 것은 이해가 될 만하죠. (독립전쟁은 80년이나 지속됬습니다)

한편 천주교 선교활동에 적극적이었던 포르투갈과 달리, 네덜란드는 개신교 전파에 그다지 적극적인 편은 아니었습니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가 지배한 기간 내내 자바섬의 주요 종교가 이슬람에서 개신교로 바뀐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거기다 개신교인들의 선교활동도 주로 인도네시아의 동쪽 지역에서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하였습니다. 당시 인도네시아의 동쪽지역은 포르투갈과 전쟁해서 뺏은 지역이 많았죠. 그러니 네덜란드인들은 인도네시아인들을 천주교에서 개신교로 전향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을 뿐인겁니다. 그래서 현재 인도네시아의 종교분포를 보면, 동쪽섬을 중심으로 개신교가 널리 퍼져있죠. 하지만 1920년대가 되어서 뺏은 플로레스 섬이나 서티모르, 아예 뺏지도 못 한 동티모르같은 경우는 여전히 천주교세가 강하죠.


기독교와 인도네시아 민족

바딱족

바딱인들은 북부 수마트라 토바호수 주변에 살고 있는 한 민족입니다. 위로는 아체족이 있고 아래로는 미낭까바우족과 만델링족이 살죠.


바딱족 기독교

노란부분

바딱은 민족적으로 왕따였는데, 왜냐면 바딱족은 민족성이 워낙 거친데다, 꽤나 야만적인 문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종교의식 중에 식인행위도 있었죠. 거기다 동남아시아의 이슬람교가 시작된 지역인 아체족과 사이가 안 좋아서, 이슬람을 거부했거든요. 그래서 주변 무슬림 민족들에 의해 항상 공격당하기 일수였죠. 이런 이유로 바딱족은 외부세력과 결탁하기 아주 쉬운 상태가 되었고, 그 세력은 바로 유럽인들이었습니다.

18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수마트라 북부는 네덜란드인들에게 점령당하지 않았던 시점이었습니다. 당시에 일시적으로 영국령이었던 동인도회사는 2명의 선교사 겸 외교관을 바딱인들에게 보낸 것이 기독교 전파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1800년대 후반에는 수마트라 북부까지 네덜란드령 동인도군에 의해 점령을 당하게 된 후, 무슬림이 아니었던 바딱족은 독일계 루터교 선교사들에 의해 종교적으로 독실한 개신교인이 되게 됩니다. 대표적인 선교사로 루드비히 진저 노멘슨(Ludwig Ingwer Nommensen)이 있는데, 이 사람은 수마트라에 선교사로 일을 시작한 이후, 바딱어로 신약성서를 번역했고, 죽을때까지 수많은 바딱 기독교인들을 양성하였습니다.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파인 Huria Kristen Batak Protestan (HKBP)을 세우게 되었죠.


바딱에 개신교 선교한 독일인

루드비히 진저 노멘슨

독립 이후 바딱인들은 다른 민족과의 결혼 등을 통해 무슬림 인구가 급격하게 늘게 되었습니다만, 여전히 인도네시아인들에게 바딱인이라고 하면 기독교가 먼저 떠오르죠.


인도네시아 화교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은 원래 유교와 불교가 가장 많았었습니다. 2010년에 마지막으로 실시된 호구조사에서도 인도네시아 화교는 불교가 45%, 천주교가 35%, 개신교가 9%로 여전히 불교가 가장 많았습니다.

하지만 천주교와 개신교를 기독교로 묶어서 환산한다면 수치적으로도 기독교가 불교 못지 않게 많고, 기독교인구는 계속 느는 한편 불교는 계속 줄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적인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의 종교는 기독교라고 볼 수 있죠.

특히 자바섬에 사는 화교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입니다.

왜 인도네시아 화교 기독교인구는 이렇게 많을까요?

Quora 에 인도네시아인들이 대답한 것들을 보면, 원래 화교들의 주요 종교는 유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하르토 정권 기간에 반중정책을 폈고, 그 중 하나가 유교를 공식종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많은 많은 화교들이 기독교를 택하였는데, 그 이유가 기독교는 중국 공산당과 덜 관련있어 보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때부터 많은 자바섬의 화교들은 기독교로 남게 된 거죠.

한편 이들에게 왜 이슬람이 없을까요?

지역적으로 인도네시아 화교는 무슬림이 사는 지역에 같이 살지만, 화교가 인도네시아 현지 민족하고 결혼을 거의 안 합니다. 결혼을 하더라도 대부분 여자쪽이 현지 민족이다보니, 보통 여자측이 남자 종교로 맞춰주니까 여자쪽에서 기독교로 바꾸는 겁니다. 이런 게 자꾸 반복되니까, 인도네시아 화교는 무슬림이 될 일이 없는 거죠.


이슬람과 충돌

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이 대다수이다보니, 기독교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무엇보다 유럽인들의 종교거든요. 예전에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이 전파한 종교다보니, 한편으론 선진국의 종교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전통적인 종교가 아니라고 보는 거죠.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때도 동쪽 세력(술라웨시 파푸아 암본 등등)은 기독교인들이었는데, 이들은 아예 네덜란드편에 서서 네덜란드인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독립군과 싸웠습니다. 그러니 자바섬 이슬람 세력을 중심으로 독립된 시기부터, 이슬람과 기독교의 사이는 안 좋을 수밖에 없죠.

무슬림과 기독교인간에 충돌이 여러차례 있었는데, 그 중에 유명한 것이 2011년 2월에 자와뜽아 뜨망궁(Temanggung) 지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안토니우스 바웽안이란 기독교 신자가 자신의 책에다가 무슬림들이 신성시하는 카바신전의 검은 돌은 여성의 성기를 닮았고, 메카에 악마를 상징하는 3기둥(Jamarat)은 남성의 성기를 닮았다고 언급했거든요.

그러니까 종교비하로 법적 최고형인 5년형을 받았는데, 이 때 무슬림 재판 방청인들이 왜 사형시키지 않았냐면서 변호사, 검사, 판사 등을 폭행하고 뜨망궁 시내 교회랑 기독교 학교에 불을 질렀죠.

더 최근에는 자카르타 주지사로 유명한 화교 정치인 아혹 (바수키 차하야 뿌르나마) 사건이 있죠. 아혹은 조코위 러닝 메이트로 자카르타 부주지사였다가, 조코위가 대통령이 되면서 주지사 자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혹은 뿔라우 스리부 뿌라무까 섬에서 꾸란 알 마이다 51절을 언급하면서, ‘나를 뽑으면 지옥간다는 거짓말을 믿으면 나를 뽑지마라. 괜찮다.’ 이런 식으로 말했거든요. 이후 이슬람 종교의 교리를 기독교인이 함부로 해석했다는 이유로, 자카르타에서 엄청난 시위가 잇따랐고, 아혹은 2년간 옥고를 겪었습니다.


아혹을 규탄하는 시위

아혹을 규탄하는 시위


인도네시아 기독교인들하고 얘기를 해보면, 종교비하 금지법(penistaan agama)이 “이슬람교 비하 금지법”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무슬림 정치인들이 기독교를 비하하는 건 비일비재하지만 문제된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하네요.


인도네시아의 힌두교와 불교

힌두교와 불교는 인도네시아에 들어온지 가장 오래된 종교입니다. 인도네시아의 상징인 가루다는 힌두교의 신조(神鳥)이기도 하죠.

이슬람교나 기독교에 비해서 신도수도 적고, 간단하기 때문에 묶어서 알아봅시다.


인도네시아 힌두교와 불교의 역사

역사적으로 힌두교와 불교는 모두 인도에서 기원합니다. 두 종교 모두 무역을 통해 선진문화로 유입되다가, 기존 인도네시아에 있던 왕족들이 정치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기 위해 종교를 받아드렸다는 가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중세 인도네시아에 가장 큰 왕국이었던 스리위자야 왕국과 보로부두르 사원으로 유명한 사일렌드라 왕국이 바로 불교왕국이었고, 이후 마따람 왕국과 함께, 인도네시아의 가장 큰 제국이었던 마자빠힛 제국이 힌두교 국가였죠.

힌두교가 누산타라 제도의 주요 종교가 된 이후, 인도네시아의 불교는 사라진 것이라기 보다, 변형되어 힌두교에 흡수되었습니다. 이게 가능한 것은 힌두교가 다신교 신앙이기 때문이죠. 힌두교 안에는 신의 존재가 매우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를 포함해, 어떤 종교라도 힌두교 속에 포함될 수 있죠. 예를 들면, 석가모니는 힌두교 비슈누 신의 9번째 화신으로 보는 것입니다.

13세기들어, 이슬람교 세력이 마자빠힛 제국을 무너뜨렸을 때, 힌두교 교인들은 지쟈(jizya)라는 이슬람 세금을 내고 살던지, 아니면 무슬림이 되던지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만약에 무슬림이 되기 싫으면 도망가서 살아야 했죠. 그렇게해서 도망간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발리섬입니다.


종교인정 여부

힌두교와 불교는 초창기 수하르토 정부시절부터 공식 종교로 승인받지 못 했었습니다. 왜냐면 당시 빤짜실라(Pancasila)의 원칙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인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를 가져야 되는데, 힌두교는 다신교 신앙이고, 불교는 신의 개념 자체가 없는 종교니까요.

그래서 1952년에는 정부가 힌두교인들을 이슬람교로 전향시키는 캠페인도 벌였습니다. 하지만 발리 정부가 이에 반발하며, 힌두교 국가인 인도에 종교적, 인도적 도움을 요청했죠. 1962년에 결국 발리인들의 노력으로 힌두교는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요구하는 종교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며, 종교로 인정 받습니다. 이 때문에 현재 인도네시아의 힌두교는 Acintya라는 유일신이 있죠.


Acintya와 부처

힌두교의 Acintya신과 불교의 부처


수하르토 집권기 때, 불교는 부처(Sanghyang Adi Buddha)를 유일신으로 모시는 걸로 하고, 힌두교와 함께 유일신이 있는 공식 종교로 인정을 받습니다. 하지만 많은 인도네시아 화교가 믿던 유교와 도교를 종교로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하여 많은 수의 화교들이 종교를 불교와 기독교로 갈아탔죠. 이게 현재 불교에 화교가 엄청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1998년 수하르토가 쫓겨나고, 와히드 대통령 시절에 화교들을 위해 유교를 공식종교로 인정해줬지만, 다시 유교로 바꾸는 사람은 많이 없었죠.


인도네시아 힌두교와 불교의 한계점

인도네시아에서 힌두교와 불교의 가장 큰 공통분모는 신분증용 힌두교와 신분증용 불교가 너무나도 많다는 겁니다. 수가 워낙 적어서 이런 얘기가 안 나올 뿐이죠.

먼저 발리출신이 아니거나, 발리섬 밖의 힌두교는 대부분 힌두교인이 아닙니다. 토착신앙을 믿는 사람들이죠. 예를 들면, 다약족의 경우에 까하링안(Kaharingan)이라는 토착신앙이 있는데, 인도네시아의 주요 종교로 인정받을 수 없으니까, 다신교 신앙인 힌두교를 믿는다고 하는 겁니다.

다약족 종교

빨간 점이 칼리만탄에 힌두교 강세인 지역

다약족 외에도, 여러 지방에서 토착신앙을 믿는 민족들은 힌두교를 종교로 씁니다.

불교도 비슷한듯 마찬가지입니다. 인도네시아의 불교신자는 대부분 화교들인데, 유교가 없어지자, 화교들이 유교에서 불교로 갈아타면서, 불교신자도 아닌 사람들이 불교로 쓴 거죠.

거기다 인도네시아에서 인정된 불교는 소승불교입니다. 그래서 대승불교인 한국이랑 석가탄신일도 다르구요.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계들이고, 이들은 대승불교인들입니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불교 학교들도 대승불교를 따르거든요.